새로운 근무지로 출근한지 2주가 지났다. 업무의 난이도는 낮지만 효율성에 있어서는 최하위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대기업인데 이렇게 무대포식으로 일을 한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뭔가 개선하려는 시도는 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업무를 해서 그간의 히스토리를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아독존격인 직원이 가장 큰 이슈였다. 툭하면 그만 두겠다는 말을 내뱉으며 협박아닌 협박을 일삼고 있는 상황이라 그의 업무를 모두 파악해서 계약만료가 되면 쳐낸다는 것이 윗선의 큰 그림이었다.
하지만 난 그 역할을 할 생각이 없다. 회사는 회사일 뿐 정치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일단 내게 주어진 일을 실수없이 해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12월까지 계약을 했기에 그 이후에는 다시 금융권 프로젝트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 다음 계획이다.
모든 일은 당연히 힘들다. 그래서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참고 일하지는 않는다. 난 용역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이지 내 감정을 다쳐가면서 참는 것까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H이사는 당분간은 성질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화가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지랄맞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직원식당이 따로 있지 않고 근처에도 마땅히 먹을 만한 곳이 없다. 해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냄새가 나지 않는 볶음밥 같은 것을 얼른 먹고 휴게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와 같이 밥먹는건 여전히 귀찮고 불편하다. 출근시간이 8시 30분이지만 8시경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공유오피스여서 휴식환경은 괜찮은 편이지만 책상이 좁고 모니터도 1대만 놓을 수 있어 업무환경은 그리 좋지는 않다.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일한다고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 하기 싫어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괜찮다. 보람을 느끼거나 성취욕을 얻을 수 있을거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냥...일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