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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발견/베트남캄보디아

캄보디아 씨엠립 4일째

by iamlitmus 2012. 3. 27.

앙코르왓 1일투어를 신청했다. 남들은 3-7일권을 끊어서 보는데, 단 하루만에 핵심 사원을 모두 돌아보는 극기훈련 철인투어다.

앙코르톰까지는 괜찮았으나, 치명적으로 더위에 약한 체질이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 주제에 항상 동남아만 여행한다.) 시뻘겋게 달아 올라 원숭이 똥구멍 얼굴을 한 채 온몸에서 땀을 펑펑 쏟아내는 나를 보고 가이드가 괜찮냐고 묻는다.
그 탑이 그 탑같은데, 자꾸만 올라가라하니 돌아버리겠다. 보통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이 시간에 수영장에서 쉬고, 오후에 다시 온다는데, 난 뭔 나라를 구하겠다고 여기 있는 것인가.하는 존재에 대한 고민마저 들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가이드가 데려간 식당에서 고민은 또 시작됐다. 향신료를 피하기 위해 고심끝에 주문한 음식에는 또 팍치가 들어 있었다. 절망감이 땀과 범벅이 되어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튕겨냈다. 직원에게 빼달라고 말하니, 다시 만들어 주겠단다. 그리고는 감감 무소식이다. 다른 사람들 다 먹고, 곧 일어날 것 같은데, 슬슬 부아가 치민다. 가이드한테 가서 음식 안나왔다고 하니, 직원을 불러 뭐라뭐라 해서 다시 오긴 했는데. 향이 좀 약해졌을 뿐, 여전히 팍치가 들어갔다. 다 집어 치우자구.

삼겹살 불판처럼 달궈진 앙코르왓 진입로를 걸어가며, 여기에서 쓰러지면, 5분도 되기전에 육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다. 가이드가 앙코르왓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있다고 했다. 정신없는 가운데서도 위트있네.싶어 일행에게 말해주니, 진짜로 믿는다. 넌 뭐냐.

사원 내부는 말그대로 시원하기는 했으나, 사람들이 미어 터져 줄지어서 다녀야했다. 앞사람 엉덩이를 머리에 이고, 오르락내리락 한다. 주위에서는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으로 설명하는 가이드들로 정신이 없다. 크메르 왕조한테는 미안하지만,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가진 내게는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냥 그늘에서 쉬고 싶은 마음뿐인데, 일행이 있으니, 억지로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우와-우와-하는데, 이거 사진에서 봤던거 그거네. 저거네. 마인드밖에 안된다. 너무 덥다. 진짜.

마지막 코스인 일몰을 보러 가자고 한다. 해마다, 정동진이나 대청봉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보러 가던 사람들을 비웃던 나다. 해가 지려면 한시간도 넘게 남았는데 하루종일 달궈진 탑에 올라가서 기다리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탑 밑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일행이 해졌다고 내려가자 한다. 괜히 나때문에 일몰도 못 보게 한 것 같아 미안해진다.

시엠립에서 마지막 밤, 대박식당에 가서 한국음식을 실컷 먹었다. 반찬 하나하나가 감동적인 맛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정착해서 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위대해 보인다. 삼겹살 무제한 정식 1인 5불. 울뻔했다. (근데, 고기는 질기다. 원래 캄보디아인들은 질긴 고기 좋아한다고 하는데, 질긴 고기만 먹어서 그런거 아닐까. 왼쪽 야채무침 대박! 정말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