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기념식에는 안가면서 야구장 시구 하러 간 윤모씨 부부를 욕하는 중에 제주 4.3사건이 뭔지 알아?라는 미대오빠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잘난척 하는 것이 보기 싫어 그냥 안좋은 일이야라고 내뱉었지만 속으로는 창피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갔을 때 느꼈었던 감정이 떠올랐다. 악하다는 단어는 너무 약하다. 만행, 참혹, 몰염치함과 천박한 뻔뻔함. 더 공포스러운 것은 지금도 여전히 얼굴만 바꿔 진행중이라는 사실. 주말내내 소방헬기가 오가는 와중에 합정동 벚꽃길은 인파로 가득했다.
자존감은 3가지로 이루어지는데, 내 인생이 잘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감정인 '자기 안정감', 본인의 선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기 조절감',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이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왜?'. 미대오빠는 초딩이랑 대화하는 기분이라며 기분나빠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단어는 '아..그래?' . 관심없다는거지.
직원식당 줄이 길었다. 밥이 떨어져서 새로 지어야 한다고 했다. 치킨 가라아께라는 대체 메뉴가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치제육에 목숨을 건 것 마냥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줄이 줄어들기 시작할 때 식당 직원은 끊임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까지 죄송할 일인가.' 그럴 수도 있는거 아닌가.
밥솥 바닥에 있는 누룽지를 긁어 담았다. 기다림에 대한 보상처럼 김치제육은 몹시도 맛있었다. 천천히 수저를 놀리면서 주말에 빌려온 은희경 책을 읽었다. 역시 잘 쓰는구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 묘사도 충분하고 유치하지 않아. 표현도 고급지고. 그러면서도 주제를 끝까지 놓치지 않아. 최근 읽은 책 중에서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진건 오랜만이다.
만우절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도 다 큰 어른이.
길을 물어보는 척하면서 내 얼굴을 응시하는 포교 무리들에게 느끼는 불쾌함과 유사하다.
장난으로라도 속임을 당하는 건 짜친다.
지난 주말, 미대오빠는 화실 친구들과 함께 충북 영동지역에 여행을 갔다. 특급 결벽환자인 그가 겪을 고난이 충분히 예상되었기에 그토록 말렸건만 중2병 걸린 애처럼 반항하듯 떠났다. 그가 보내 온 사진마다 절망이 잔뜩 묻어났다. 누워 잠들기는 커녕 아무 것도 만지고 싶지 않아 밤을 꼴딱 세웠다고 하는데, 하루 2번씩 30분 넘게 샤워하는 루틴도 건너 양치와 세수만 했다고 한다.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양변기 옆에 큰 물통을 채워놓고 사용하는 욕실이었다고 함)
밖에서는 감정표현 자체를 안하는 사람인데 다음날 마중나간 전철역 저만치에서부터 두팔을 활짝 벌린 채 걸어와 안긴다. 극기훈련에 다녀오면 하루 정도는 효심이 폭발하는 아들처럼, 그도 몇 시간은 애정이 넘쳐났다.
나 시골에서는 못 살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