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페토 법칙 :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
ex. 백화점 매출 80%를 20%의 고객이 차지하는 것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에서 따옴.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새로운 고난이 시작된다. 20%의 치트키가 나머지 80%를 견딜 수 있게 해 준다고 가정해 보면 내게 있어 20%의 킥은 무엇일까. 터벅대며 출근하는 회사도, 끊임없이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도, 마른 수건을 쥐어 짜여 집으로 돌아가는 지쳐버림도 모두 다 잊게 만드는, 진짜 20%가 뭘까.
며칠 동안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아 주변인들에게 물어봤다.
K는 아이들, 가족, 종교인 것 같지만 당장은 퇴근이라고 했다.
S는 20%가 없어도 대체적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별일 없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큰 행복도 없지만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J는 한참을 생각하다 없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하루 종일 지옥불이야? 맞아요.
목요일 저녁부터 슬금슬금 기대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금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오늘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기쁨이 샘솟았다. 그렇다. 나의 20% 기쁨은 주말이었다.
금요일 저녁에는 늦게까지 영화를 봤다. 2시가 넘었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10시경 눈을 떴을 때 나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련님이 아침에 돌리고 간 빨래를 널고, 노브랜드에서 구입한 원두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셨다. (예상보다 꽤 맛있다. 로스팅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물을 부을 때 거품을 마구 뿜어낸다.) 회사에서는 머신이나 스틱형으로 빨리 내리고 마실 수밖에 없지만, 주말에는 느긋하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커피 거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멍타임이 뇌를 쉬게 해 준다.
창 밖으로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본다. 봄이다. 여름 전초전처럼 달궈지고 있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21도 정도의 시원한 바람으로 집안을 환기시킨다. 몇 개월 뒤면 이런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
베키를 타고 도서관으로 달렸다. 확실히 바람의 온도가 다르다. 이 좋은 날에 사람들은 도서관에 다 모여 있다. 아이들도 비명을 질러대며 온 몸으로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 요즘 들어 책 읽는 것이 힘들어졌다. 눈으로만 글자를 훑을 뿐 머릿속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심혈을 기울여 몇 권을 골랐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스커피를 타먹었다. 잠깐 쉬었다가 본가에 가야 한다. 마음이 어두워진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고역이 된 건 오래전부터다. 제대로 된 대화가 어렵고 그냥 아무도 만나지 않고 쉬고만 싶은 마음이 크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고기를 굽고 계셨다. 가족간에 대화는 거의 없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에 일일이 대꾸하는 것은 피곤하다. 미리 만들어 놓은 튀김은 눅눅해졌다. 이것저것 싸줘 봤자 변해서 버리는 일이 다반사지만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방에 넣었다.
집에 돌아오니 도련님은 이미 씻고 자리에 누운 상태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내가 없었으니 밥도 안먹었겠지. 본가에서 챙겨준 포도를 씻어 놓으니 슬그머니 나와 입에 넣는다. 4살짜리 어린애 같다. 혈압 때문에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한다. 아침마다 두 번씩 혈압을 재는데 정상으로 나오면 당황한다. 이상하다. 병원에서 재면 140이 넘어. 나는 90 이하 초저혈압이다. 동면도 아니고 심장이 이렇게 늦게 뛰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니. 기적 같다.
일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떠오른 생각은 20%의 기쁨 중 어제 10%를 사용하고 오늘 10%가 남았다. 정말 알차게 써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오늘은 어두운 색 빨래를 하는 날. 깨끗하게 세탁된 빨래를 너는 것은 재밌다. 마른 빨래를 착착 개서 옷장에 넣을 때 뭔가 리셋되는 기분이 든다.
커피를 내려 마신 후 집근처 교보문고에 갔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대형서점이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인생처럼 느껴진다. 서점 벤치에서 이상 문학상 대상 작품을 읽었다. 이렇게 쓰면 대상을 주는 거구나. 어느 사이엔가 너무나도 어린 작가들이 서점을 채우고 있다. 고령 작가들의 작품은 찾기 힘들다. 내 또래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서점을 나와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에 들렀다. 얼마 전 옷을 잔뜩 버렸기 때문에 옷장에는 그 만큼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대문 구제 아저씨네 간지도 오래되었다. 겨울옷을 집어넣고 여름옷을 꺼낼 날씨가 되었다. 마침 면바지를 할인하길래 결제하고 나와 망원시장 방향 버스를 탔다. 기후동행카드가 있으니 아무 때나 버스에 올라탈 수 있어서 좋다. 망원시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특히, 우후죽순 생겨난 과일가게들은 저녁 무렵이어서 그런지 떨이를 외치고 있어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있었다. 얼마 전 딸기가 고혈압에 좋다는 말을 하던 도련님이 생각나서 슬쩍 끼어들었다. 한 번만 먹을 분량이 필요하다. 너무 많이 사면 또 버린다. 알이 큰 것은 몇 천 원 더 비쌌다. 제일 저렴한 것을 집어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도련님은 소파에 앉아 세상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세탁가방에 깔개가 잔뜩 들어있는 것을 보니 빨래방에 갔다 온 것 같다. 원래는 같이 가야 하는데 혼자서 세탁하고 건조까지 하고 온 모양이다. 휴일이면 집에서 청소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어딜 그렇게 다니냐고 짜증을 낸다. 저 인간 먹으라고 내가 딸기를 샀구나. 씻어서 접시에 내놓으니 몇 점 집어 먹다가 만다. 너 이거 제일 싼 거 사 왔지? 한 2천 원? 도련님네 집은 제일 비싼 거만 먹는다. 남은 건 그냥 내가 집어 먹었다. 해가 졌다. 나의 20% 행복을 거진 다 써버렸다. 내일은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