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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나만이라도 사람처럼 살고 싶다

by iamlitmus 2019. 6. 12.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지 21년차 아파트이다.

수리는 커녕 도배나 장판도 바꾼 적이 없는 터라 말그대로 낡음 그 자체이다.

가구나 가전 또한 버리는 법을 모르는 노인네들인지라 스파크가 나면서 터지지 않는 한 뭘 사는 법이 없다.

10여년전인가 재개발 딱지를 샀지만, 입주는 커녕 원주민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첫 삽질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사갈거니까 집에 돈 들이는 건 낭비라고 입버릇처럼 우겼다.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나로서는 집은 그저 숙소의 개념 정도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이사를 해서 인테리어를 하고 매일 쓸고 닦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어느 순간부터 집에 들어올 때마다 곰팡이가 잔뜩 끼어 있는 욕실, 전등이 어두워 커버를 벗겨내어 창자를 드러낸 방 조명, 정리가 되지 않은 주방 등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치워도 티가 나지 않고, 그나마도 노인네들의 라이프 스타일로 인해 금세 원복이 되어 버리니. 청소할 맛도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소한 부품부터 시작했다. 칠이 벗겨진 동그란 손잡이를 무광 일자 손잡이로 교체했다. 정리가 안된 채로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차 있던 서랍속 물건을 처치하고, 조립식 캐비넷을 사서 대체했다. 아무리 청소기로 밀어도 때가 지워지지 않던 깔개를 버리고 천연 소재 러그를 깔았다. 욕실의 실리콘을 벗겨내고 다시 바르고, 벽면 줄눈도 새하얗게 채워 넣었다. 방을 들어서고 나갈 때마다 찰칵 소리가 좋았고, 욕실에 들어가는 것이 불쾌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사소한 변화가 내 인생을 조금씩 들어서 옮겨주는 듯한 기분 마저 들었다.

 

최근 주문한 LED 방조명과 욕실등이 도착했을 때 엄마는 그동안 참고있던 화를 냈다. 어차피 이사 갈건데, 왜 헌집에 돈을 쓰냐고 했다.  단 한달을 살더라도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다고, 내가 힘들게 돈벌어서 이 정도도 누리면 안되는거냐고, 엄마는 평생 그렇게 사는게 익숙할지 몰라도 나까지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후회할 것이 뻔한 말들이라 그냥 꿀꺽 삼켰다. 

 

나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