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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발견/독서루틴

독서루틴 - 하루10분 인문학(인간에 대하여)

by iamlitmus 2022. 3. 27.

인간에 대하여

1.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일까

행복을 추구한 것으로 가장 유명한 철학자는 에피쿠로스이다. 이 시기에는 아테네 철학(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이 쇠퇴하고 헬레니즘-로마 시대 철학이라 불리우는 3기 그리스 철학이다. 이 시대에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의 윤리적 문제가 주된 사색의 주제였다.

흔히, 쾌락주의로 분류되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성욕, 물욕 등 동물적이고 순간적인 쾌락을 넘어서서 문화나 예술을 즐기는 정신적 욕구를 충족하고 장기적이고 지속성 있게 찾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쾌락을 얻으려면 걱정과 위험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들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가 대표적인 예다. 법과 관습또한 개인의 이익을 높일 때만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쾌락 추구를 통한 고통이 없는 상태, 마음의 동요에서 해방되는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부른다. 이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참된 행복에 해당하며 모든 종교적 미신을 버리고 이성의 인식에만 입각한 곳에 아타락시아가 있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는 케포스라는 일종의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여성과 노예를 편견 없이 대하는 정신을 발휘했다. 덕분에 매춘부를 애인으로 삼았다거나 토할 정도로 먹는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epicure'라는 단어가 '식도락가'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는 음식에 돈을 쓰지 않고 대부분 물만 마시는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앞서 스스로 행복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것인지 묻고 답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격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평온한 상태이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갖춰야겠지만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가 아닌 수준(이것도 많은 건가 싶지만) 외에 오늘도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 안정적인 기분을 느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새로운 목표나 사람 등을 내 인생에 넣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호기심 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일 때(잇티제의 대표적 특징)가 베스트이다. 이런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했으며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았다. 다행인 건 지금의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가끔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대부분 행복한 평온함을 갖고 있다. 그럼 된거지 뭐.

2. 꿈은 필요할까?

니체는 꿈과 희망을 '영혼의 영웅'이라고 칭하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 위해 결코 이상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떤 꿈이든 자유가 보장될 때 우리와 사회 모두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3.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할까?

신은 죽었다 -니체
기독교를 포함한 서구 문명의 오래되고 낡은 가치를 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기존의 종교와 사상이 생을 부정하는 것이었다면, 니체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의 삶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보이지도 않는 다음 세계를 말하는 것은 오히려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았다.

위버멘쉬(Ubermensch 초인)
기존의 해로운 전통과 가치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인간

디오니소스
생명성, 영원성, 긍정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세계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생명의 언어로 그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

아모르파티(운명에 대한 사랑)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최고 형식. 무한히 반복되는 삶과 세계를 긍정함으로써 허무를 극복하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

4. 사랑이 의무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행위가 강제력 있는 행위로 규정 또는 이해될 수 있을까?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와 여성해방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계약결혼을 한다. 인간은 자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르트르와 결혼 후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사회 관습에 저항했던 보부아르는 사랑은 각자의 주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관계라고 정의했다. 이들의 계약결혼은 50년 이상 지속되었고 다음과 같은 조건에 동의했다.
첫째,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허락한다.
둘째, 상대에게 거짓말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5. 나는 육체를 갖고 있는 것일까, 육체인 것일까?

데카르트는 기존 신념의 틀을 유지한 채 이를 조금씩 수정하기보다는 신념 자체를 모두 제거한 뒤 대체할 대상을 찾는 방법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썩은 사과 하나가 다른 온전한 사과를 썩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잘못된 신념 하나가 올바른 신념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급진적 회의 방식을 '데카르트적 회의'라고 부른다. 지식의 토대는 '단연코 의심할 수 없는 지식'위에 세워져야 하므로 존재하는 신념 전부를 거짓인 것처럼 다루고 정말로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만 그것을 믿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코기토 명제)
악령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존재가 우리를 끊임없이 속이고 있다 할지라도 도저히 속임을 당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가 여전히 있음을 의미한다. 코기토 명제는 인간의 이성을 진실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는 '합리주의'에 확고한 논리성을 부여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정신이 육체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 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갈까?

스토아학파는 윤리학을 실천의 영역으로 가져오고자 했다. 과감하게 일을 시작하고 결단에 따라 행위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며 괴로움을 참고 쾌락을 버려야 하며 일관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실천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을 '공공생활에의 참여'를 들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고독 속에 처박혀 있기보다 활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파테이아란 정념이 없는 마음 상태를 일컫는다. 정욕이나 분노, 공포에 휘둘려서는 안 되며 동정이나 후회에 의해 움직여서도 안 된다고 했다.
'세계가 무너져 떨어질지라도 의연히 버티고 서 있는 자라면 그 파편만을 맞게 되리라'

이 모든 것을 실천하는 자를 '현자'라고 부른다. 그는 모든 덕을 갖추고 있으며 항상 올바르게 행위하는 자이며 진정으로 행복한 자이다. 스토아학파는 이런 현자만이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때로 지나친 억제 탓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스스로 굶어 죽기를 선택하거나 발가락이 부러진 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는데, 이는 아파테이아의 상태 즉, 무언가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 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생을 준단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동일하다는 '인간성'의 개념을 제시하여 서양철학의 줄기를 형성했으며 모든 인간이 동일한 가치와 권리를 지닌 시민이라는 '세계주의'를 주창해 로마의 만민법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7. 인간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추구할까?

성무선악설(맹자, 고자)
인간이 본성은 선한 쪽으로 이끌면 선한 인간이 되고 악한 쪽으로 이끌면 반대라고 보았다.

성선설(맹자)
인간의 본성에 선과 악의 요소가 모두 들어 있는데 이를 조절하지 못하면 악으로 이끌릴 수 있다. 맹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보았다.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근본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의로움의 근본,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슬기로움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맹자는 착한 본성을 토대로 인의예지라는 사덕을 쌓아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성악설(순자)
순자는 사람을 본성 그대로 두면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고 서로를 질투하며 귀에 즐거운 소리나 아름다운 색체만 좋아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성품이 아직 교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 성품이 선할 리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인간은 무리를 벗어나서 살 수 없으며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협동과 도움이 필수라고 했다. 또한 인간이 다른 생물에 지지 않기 위해서도 단결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행위 규범이 필요한데 그것을 예라고 부른다. 예는 학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성삼품설
어떤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어떤 인간은 악하다는 것이다. 상은 가르치지 않아도 선한 것, 하는 어떻게 해도 악한 것, 중은 가르침에 따라 선 또는 악이 되는 것으로 구분했다.

8. 나에 대한 앎은 지식의 일종일까?

소크라테스는 2가지 죄목으로 고소를 당한다. 첫째는 청년을 부패하게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라에서 인정하는 신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믿는 다는 것이다. 그는 500명의 배심원 앞에 나서 자신이야말로 청년을 참되고 교육하는 '아테네의 양심'이며 폴리스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는 비난 역시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해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무지의 지', 즉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역설한다. 그가 사형을 자초한 이유는 추방당하거나 입막음당해 철학을 못하게 되면 그 삶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으며 죽음은 고통스럽고 잔인한 일이 아니라 완전한 무의식, 무의 상태 또는 다른 세계로 영혼이 이주하는 일종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의미는 독선과 오만함을 버리고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는 것 그리고 그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발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9.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자'는 인간과 자연, 모든 사물들의 있음에 주목하고 이것들을 총칭하는 표현. 
'존재'는 존재자들이 가진 고유하고 성스러운 성격.

'현존재'는 존재를 묻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자, 스스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 자. 즉 인간.

 

하이데거가 생각하는 인간

1. 세계 안의 존재

자신이 선택하거나 만들지 않은 세계에 자의와 관계없이 내던져진 존재. ('피투되었다')

2. 불안

허무감 도는 무상감 같은 느낌. 왜 여기 살고 있을까,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등 불안을 내포한 물음.

3. 죽음에의 자각

죽음을 통해 자신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을 '기투'라고 표현한다.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을 갖추게 된다는 뜻.

 

남들이 하는 대로, 주어진 대로 사는 삶을 '비본래적 삶'이라고 한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지만 이 때문에 더 충실한 '본래적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 시대는 인간 역시 '인적 자원'으로 활용되는 '몰아세움'의 세계이다. 몰아세움은 모든 존재자에게서 고유한 존재성을 박탈하고 유용성, 즉 쓸모 있는 것만을 존재자로 간주하여 '존재의 탈락'자체를 은폐하기까지 한다.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매 순간 시적인 태도로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적인 태도란 사물이 스스로 그들의 진리를 드러내게 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존재자들의 지배자가 아닌 존재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며 존재자들 고유의 존재와 근원적 세계에 경이를 느끼며 이들의 수호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10.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이 가능할까?

데카르트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탐구한 대표적 인물이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생각하는 자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자란 무엇일까. 의심하거나 이해하고, 긍정하거나 부정하고, 의지력을 갖거나 상실하고, 또 상상하고 감각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