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의 발견

두부[박완서]

by iamlitmus 2007. 3. 26.
한동안 하루키의 열풍이 불때도, 뒤를 이어 해리포터가 들이닥쳤을때도 올곧고 흔들림없는 글빨을 보여준 작가, 박완서씨의(70세가 되셨으니 존칭을 써야만 할것 같다) 산문집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5권의 작품집조차 읽어내지 못한 터라 새로운 책을 집어들며 부끄럽기 그지없었지만, 요새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에 바로 안면몰수하기로 했다.

이젠 서슴없이 자신을 노년이라 칭하는 작가는 마치 산이 보듬고 있는 듯한 조그만 마을에서 산다. 새벽녁에 창문에 부딪혀 죽는 새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면서, 자연에서 얻은 채송화씨를 자신의 앞마당에 심고 희미하게 움트는 생명을 고대하며, 봄을 보내고, 여름을 견뎌낸뒤 가을을 맞이하며,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되새겨 보며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금새 읽혀나가지 않고 두세번 반복해서 읽어야 할 정도로 허둥댔던 이유는 뭘까. 그 자리에 서서 10분만 읽으면 금새 전체 내용을 알아차릴수 있는, 그렇다고 자잘한 이로움도 갖추지 못한 책들에 치여 살다보니 막상, 정직하고 진지한 글을 대하면 낯선 언어처럼 느끼고 만다.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푹 고은 사골처럼, 은근한 불에 오랫동안 달인 한약처럼 몸에 좋은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