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윤기 배우: 전도연, 하정우 외 뛰어난 조연들
희수(전도연)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을 대신한다. 다른 이가 땅투기를 해서 돈을 벌면 부러워하고, 경마장에서 자신의 행운을 기대한다. 누군가의 삶을 한심해하면서도, 그에 비해 자신 또한 나을 것 없다는 사실에 침묵한다. 각자 자신만의 위태한 줄타기에 신경쓰다보면,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1년전 헤어진 병운에게 꿔준 돈을 받으러 온 희수가 하루동안 돈을 꾸러 다니면서 만나는 여러 인생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희수가 보기에는 병운의 삶은 어이없고 한심하다. 그와 관련된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관계가 의심스러운 돈많은 여회장, 호스테스, 여자후배 등 모든 여자들은 주저없이 병운에게 돈을 꿔준다. 자신 또한 그런 이들 중의 하나였음에도 희수는 병운과 함께했던 그녀들을 경멸한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약해져만 간다.
전도연의 연기는 결이 곱다. 버스 창 밖을 바라보는 무표정한 표정, 전철을 타고 한강다리를 건널 때 햇빛의 음영에 따라 달라지는 보일듯말듯한 변화 또한 섬세하다. 전도연이라는 아우라를 숨긴 채, 온전히 희수라는 인물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혀를 차고, 비웃는다. 하정우는 '추격자'에서보다 가벼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훨씬 더 하정우로서 다가온다. 병운이 아닌 하정우가 희수와 대화를 한다.
여러 조연들의 자연스런 어울림도 좋았고, 단 하룻동안 서울 곳곳을 꼼꼼하게 훑어가는 여정을 따라가는 재미도 꽤 크다. '멋진 하루'를 위해 40여일동안 촬영하면서 단 한번도 의상을 바꿔 입지 않았기에 연결씬 찍기는 편하지 않았을까나. 너무 느리지도, 그렇다고 너무 많은 것을 담지도 않은 하루지만, 내 자신을 보는 듯한 뜨끔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