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 듯 울먹거리는 흐린 날씨다. 나갈까말까 망설이다 바이크를 몰고 나갔다. 이젠 바이크의 엔진소리만 들어도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있다. 코너를 돌때나 가속을 할 때 내 몸과 일치됨을 느낀다. 재밌다. 너무 재밌다. 비맞으면서 달리는 것도, 주위를 휙휙 지나가는 풍경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아도 그저 익숙해지고 정겹다.
쯜룩을 거쳐 나무세공으로 유명한 동네를 지나 시장에 도착했다. 문을 닫은 상점 앞에 불법주차하고 천천히 시장통을 누빈다. 2층으로 올라가 좁은 통로를 지나가는데, 싸롱을 사라고 한다. 도대체 싸롱을 입고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대신 천가방 몇 개를 집어들자 대번에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에이..왜 그래요. 절반을 깍으니 입을 쭉 내밀며 안된다고 한다. 그럼 2개 사면 그 가격에 줘요.라고 하니, 어렵게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봉지에 담는다. 다른 물건을 들춰보자 이를 놓치지 않고, 3개 사라고 조른다. 엽전 3개가 달려있는 가방이었는데, 엽전장식이 싫다고 하자, 잘라내는 시늉을 하며. 컷.컷. 오케이? 한다.
물론 잘라내도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돈을 낼 때 슬쩍 좀 더 깍아달라고 하자 안된다고 도리질한다. 에이..그냥 줘요. 하며 돈을 내미니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가게에서 같은 가방의 가격을 물어봤을 때 결코 싼 가격에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정도면 적당한 흥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1/4가격 정도로 깍아야 한다고 하지만, 두 세번 정도 전자계산기에 숫자를 찍는 정도의 실갱이가 적당하다. 한화로 계산해서 너무 무리스럽지 않다고 생각되면 중간정도의 선에서 결말을 짓는다. 서로 얼굴 굳어지면서까지 살 필요는 없다.
돈을 내려는데, 한국돈으로 1600원 정도. 음료수 포함 가격이다. 외국인과 현지인의 물가차를 느낄 때마다 억울함보다는 좀 더 다양하게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시장의 건너편에는 짜낭에 담는 꽃이나 생선, 떡 같은 음식을 파는 현지인들을 위한 공간이다. 바닥이 고르지 않아 잘못 디뎠다가는 진창에 빠질 수도 있지만, 모두들 요령껏 피해 다닌다. 130원어치의 꽃잎이 얼마나 많은지, 콩나물 담듯 봉지 가득이다. 누룽지처럼 보이는 쌀튀김, 누군가 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설탕이 들어있는 기름이 듬뿍 묻혀진 떡을 4개 사며 돈을 내는데, 파는 아줌마가 수줍은 웃음을 짓는다. 너무 예쁘다. 이 사람들이 파는 물건에 비하면, 건너편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상인들은 완전 부자들일 것이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얇은 점퍼를 입고 온 덕분에 비가 와도 그리 불편하지는 않지만, 헬맷에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한잠 가다 멈춰서서 휴지로 닦아내고 달린다. 다른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다니는데, 저 옷은 도대체 어디서 구입하는 건지 부여잡고 물어보고 싶다.
은세공제품을 전시판매하는 갤러리.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도 정교한 조각상들로 채워져 있다. 가격은 기본 10만원대. 이곳 제품은 색이 변치 않는다고 하는데, 설마...
환전을 하려고 동네 상점에 들렀다. 보통 8900루피 정도인데 8000루피를 찍는다. 뻔뻔스럽게도 수수료를 제한 금액이라고 한다. 이런 사기꾼을 봤나. 10명 중의 하나는 이렇게 외국인에게 사기를 치는데 적극적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제대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 누구나 갖고 있을만한 로망. 비맞으며 수영하기.를 해보기로 했다. 눈을 똑바로 뜨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비로 수영장 수위마저 높아진 것 같다. 이러다 벼락 맞아서 감전사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옷이 젖을 걱정하지 않고 한참동안 수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