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투어를 하기로 한 날 아침, 어제 봤던 기사(다나) 대신 뿌뚜라는 이름을 가진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 다나는 다른 예약이 잡혀 그 대신 오게 됐다고 하는데, 영어도 좀 더 잘하고, 나이도 있어보여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 최종 목적지는 우붓으로 하고, 중간에 갤러리와 은세공점, 사파리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코스를 정했다.
동물원 사파리로 향하는 길은 도로연장 공사중인 까닭에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인데다 흙먼지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욱하다. 마치 귀성길 고속도로를 연상시킬 정도로 차량과 오토바이들의 행렬이 이어지더니, 정작 도착한 사파리 풍경은 에버랜드와 비슷한 분위기다. 입장권이라는 개념이 없이, 무조건 35불을 내야만 한다는데, 3명분을 지불하면 100불이 넘고, 이곳에서 3-4시간이나 보낼 생각은 없었기에, 잠시 상의 후, 차를 돌려 다음 코스로 가기로 결정했다.
쯜룩은 은세공으로 유명한 곳인데, 뿌뚜가 알고 있는 상점에 들렀다. 고급요정처럼 ㅁ자형태로 꾸며진 미니정원과 함께 작업실과 전시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철사를 녹여 조그만 은알갱이를 만든 다음 목걸이에 새겨넣는 작업 등을 구경한다음 제품을 판매하는 장소로 이동했다. 귀걸이는 1-2만원 정도, 반지는 2-4만원 정도의 가격대이고, 금과 진주등을 섞어 만든 목걸이는 2백만원이 넘게 호가한다. 이곳 금의 기준은 한국처럼 14K, 18K, 24K가 아니라 21K로 세공되어 거의 순금과 흡사하다.
그 다음 들른 곳은 그림을 파는 갤러리다. 발리 전통회화라기보다는 마이클 잭슨 인물화등 인기있는 패턴을 다룬 그림들이 많았다. 판매상은 전형적인 장사꾼 타입이었는데, 깎아달라는 말을 할 때마다 과장된 제스처로 능수능란한 쇼를 보여주었다.사실, 그림보다는 손으로 깎은 나무액자 가격이라고 생각했는데, 30*50정도의 액자를 만드는데 한달정도 걸린다고 호들갑을 떤다. 나중에 그림을 포장하던 직원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2주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를 불러주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곳도 뿌뚜가 잘 아는 곳임이 분명하다.
몽키포레스트의 면적은 약간 작은 산 정도의 크기지만 워낙 나무들이 울창하고 깊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거센 물살이 굽이치는 계곡도 있다. 잠깐 멈췄던 비가 거세어지더니 따가울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져온 이들에게 옹기종기 붙어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원숭이들도 큰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순간, 바로 눈앞에서 대장 원숭이가 암컷 원숭이를 덮치더니 짝짓기를 하기 시작했다. 몇 초동안에 불과했지만, 너무 놀라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옆에 서있던 서양인 가족들은 하하 웃으며 구경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신기한 듯 쳐다본다. 슬그머니 다시 쳐다보니, 암놈이 숫놈에게 쪽.하고 뽀뽀를 해준다. 그들만의 애정표현이겠지만, 더 이상은 참기 힘들다. 빗방울이 잦아든다 싶어 그냥 비를 맞더라도 나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카페 와얀'. 별도로 실내가 있지 않고, 지붕이 있는 방갈로식 테이블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직원들이 옆에 서서 잡담을 나누고 있다. S가 자꾸 우리 쪽을 보면서 키득거리는 것이 불쾌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불러서 뭐라 할 수도 없고, 빨리 먹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싶다.
비는 아직도 내리지만, 주변 상점을 잠깐 구경하기로 했다. 그 중, 맘에 드는 가죽가방이 있어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진짜 뱀가죽이라고 한다. 원단을 보여주는데, 아무리 봐도 인조가죽이다. 25만원이 넘는 가격대에 깜짝 놀라 10만원에 주면 사겠다고 하니, 때릴 기세다.
걷는 중간에 환전을 하는데, 뒤에 걸려있는 그림들이 아까 갤러리에서 구입한 그림과 똑같다. 약간 작은 사이즈 가격을 물어보니 몇 만원 더 싸다. S는 완전 바가지 썼다면서 뿌뚜에게 따질까말까 했지만, 그냥 아무말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비가 그칠 것 같지도 않고, 빈땅슈퍼에 들러 장을 보고 숙소로 가기로 했다. 뿌뚜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내일 뭐하냐고, 자기 시간되다고 하는데, 그림문제때문에 맘이 상해버린 우리는 그냥 쉴 것이라고 대꾸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