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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발견

발리에서 잠깐 살아보기 - 7일째

by iamlitmus 2010. 11. 12.

어제는 그렇게 쏟아 붓더니, 오늘 아침에는 쨍쨍하다. 매일 택시를 타고 다닐 수는 없고, 그렇다고 걸어다니기에는 힘든 기후이니, 오토바이를 빌리기 위해 렌탈샵에 들렀다. 외국인이라고 제대로 바가지 씌울 참인지, 2주동안 빌리는데도 1일 렌트가격 그대로 달라고 한다. 이래저래 가격을 흥정해서 하루 5천원정도로 결정했는데, 뜬금없이 먼저 돈부터 내라고 한다. 무의식중에 낼 뻔했지만,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이크부터 먼저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밖에 세워져 있던 몇 개중 가장 낡은 바이크를 보여주는데, 자그마치 33만 킬로가 넘는다. 이건 싫다, 다른 물건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점원은 보스한테 전화를 걸어 보겠다고 한다. 잠시 후, 못된 시어머니처럼 생긴 여자가 왔는데, 보스 와이프라고 한다. 그녀는 거만한 표정으로 할인을 많이 해줬으니 낡은 바이크를 타야 한다. 저거 진짜 잘나간다. 하며 시동을 걸어주는데나름 서울에서 바이크 좀 타본 나로서는 마후라를 불법개조해서 천년만년 타고 난 고철덩어리로 보였다. 그녀가 타고 온 바이크는 완전 최신형이었는데, 넌 저렇게 좋은 거 타고 다니면서 왜 나한테는 저런 물건을 권하느냐.식으로 생떼를 쓰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 좀 더 생각해보고 오겠다고 하니, 단번에 인상이 확 구겨진다. 발리 사람들이 다 착하고 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한국 사람들은 죄다 진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말았다.

땡볕때문이 아니더라도, 열불이 나고 약이 바짝 오른다. 발갛게 달아올라 숙소로 돌아오니 다람쥐 처녀와 관리인 총각이 입구에 서있다.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이 보였는지 모두들 나를 보며 놀란다. 함께 서있던 S가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 연결할 때 좀 더 속도가 나는 방식이 있는데, 한달에 25원정도 가격이지만, 무료로 처리해주기로 했단다. 대신, 신청하고 4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나중에 설치기사와 다시 방문하겠다고 한다.


오늘밤, 새벽 비행기로 떠날 예정인 S가 선물 몇 가지를 사고 싶다고 해서 2킬로 정도 거리에 있는 하디스 슈퍼에 갔다. 발리는 주류에 세금을 엄청 세게 매기는지, 와인은 4-5만원, 앱솔루트 보드카는 8-9만원가격이다. 발리산 보드카는 8천원 정도 하길래 스트라이프와 섞어 마셔보니, 대충 앱솔루트와 비슷한 것 같다. 대신, 과일 가격은 엄청 저렴한데, 멜론 한 통에 천원정도이다. 망고스틴은 1kg에 5천원정도인데, 약 15개 정도 된다.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슈퍼와 겸업하고 있는 렌탈샵에서 1일에 3천원 내외 가격으로 자전거를 빌렸다. 난 바이크를 타면 되지만, 운전면허가 없는 T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자전거였다.
 

저녁을 만들어 먹기 귀찮아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초저녁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식사때가 되자 외국인들로 금새 가득찼다. 계산을 할 때는 달러로도 가능한데, 소액권이 많아 처리해야겠다 싶어
 5불과 1불을 섞어 주니, 귀퉁이가 잘려나간 돈, 일련번호 등 꼼꼼하게 살핀다. (100달러의 경우 발행년도가 2000년도 이전 지폐는 받지 않는다.)
계산이 마무리 되지 않아
또 무슨 문제인가 싶었더니, 잠시 후 왕초 아줌마가 와서 이렇게 소액권을 내면 환전시 오히려 자기들이 손해다. 그리고, 위폐가 많다. 어쩌구 저쩌구한다. 기분이 상한 S가 그럼 어쩌라는 말이냐 대꾸하니, 아니.그냥 그렇다구.하며 그제서야 깎듯이 인사한다. 어차피 S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일은 없겠지만, 돈은 돈대로 쓰면서 기분을 망치니, 꽝이다. 

공항가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야간 경비원인 에코가 저만치에서 다가온다. 바이크 사고가 났다는데, 팔을 움직이지 못하고, 한쪽 다리를 절룩거린다. 그 몸을 해가지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 택시를 불러온다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S를 배웅하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함께
방을 쓰던 S가 없으니 어색하다. 시계를 보니, 지금 쯤이면 필리핀 정도까지 갔겠구나.짐작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