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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발견

발리에서 잠깐 살아보기 - 4일째

by iamlitmus 2010. 11. 9.

두꺼운 커튼을 쳐놓으니, 해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곳에 있으니, 모든 것에 너그러워 진다. 침대에 누워 바깥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만 같다. 가끔씩 날아가는 새들만이 그렇지 않음을 알려줄 뿐이다.

 

내일 옮길 예정인 숙소예약을 확인하려 했지만, 에이전시 직원의 연락처가 불통이다. 점점 밀려오는 불안감에 느긋한 기분이 점점 사라진다. 로비에 내려가 직원에게 아파트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한참동안 현지어로 통화를 하던 직원은 내게 수화기를 건네준다. 이름을 대고 예약이 되었는지 물어보니, 예약은 되지 않았지만, 직접 찾아올 경우에도 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전액을 지불했는데, 예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경우인건가. 다시 객실로 돌아와 에이전시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몇 시간 뒤 수신확인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확인하지 않은 채로 나온다. 이제는 불안감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S는 괜찮을 것이라며 다독거려주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도 불안감이 엿보인다. 예약금만 줄껄, 왜 전액을 지불했던걸까.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난 왜 이리 성급하게 일처리를 한 것일까. 거의 2백만원이 넘는 돈을 날리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최악의 사태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그와 함께 눈치도 없이 배고픔도 다가왔다.

 

호텔에서 지내는 마지막 밤이니 특별한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와룽댄스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라고 해서, 약간 거리가 있지만 분위기와 음식 맛 또한 좋다고 알려진 코코카페로 결정했다. 지도상으로는 금방일 것 같았는데,  아무리 걸어도 식당간판은 커녕 인적도 드문 외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느 사이엔가 점점 말이 끊기고, 보이지 않는 체념의 기운이 쉼없이 맴돌 즈음 드디어 식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현관앞에 골프카트 같은 차량이 눈에 띈다. 발리의 대부분의 식당은 픽업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이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호텔로 돌아갈 때 데려다 준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서 왈칵 껴안을 뻔 했다. 정원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반찬격으로 나온 접시 중에 취나물 무침과  비슷한 깡꿍이라는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좀 더 줄 수 없느냐고 물으니, 잠시 후 새로 조리를 해서 갖다준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일부러 만들어 준터라 남기면 서운해 할 것 같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 먹어치웠다. 저녁이라 해도 습한 날씨에 너무 오래 걸었었는지, 맥주 한 잔에 금새 피곤이 몰려왔다. 아까 본 카트차량을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세상에나, 차를 타고 가면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던가. 미련하면 수족이 고생한다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