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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병원 체험기

by iamlitmus 2007. 3. 26.
가슴 한켠에 뭔가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 약 3개월전이었다. 외가쪽 형제 몇분을 암으로 보내신 경험이 있는 엄마로서는 덜컥 겁이 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동네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지만 좀더 커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겁나는 대답만을 들은 채로 몇 달이 지났다.
무사히 시험을 치루고 느슨한 기분을 즐기던 중 무심결에 더듬어본 그때 그것이 몇배로 커져있음을 알 게 되었다.

물론,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고, 당장 큰 병원으로 옮겨 본격적인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결론은 양성종양. 즉, 그닥 해를 끼치지 않는 단순한 혹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키워봤자 좋을 것이 없는 것이기에 조기에 수술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주위의 우려와는 반대로 난 들뜨기 시작했다. 1년에 한번 아플까말까한, 그것도 드링크제 한병만 먹으면 몇시간만에 툭툭 털고 일어나는 건강체인 나로서는 병원에 입원해서 거기다 수술까지 받는다는, 창백하기 그지없는 연약한 주인공이 된다는 설정은 가슴 설레는 일일수밖에 없었다.

입원다음날 수술하고 그 다음날 퇴원하는, 어떻게 보면 맹장수술보다도 간단한 일정이었지만 책이며 음악씨디며 노트몇권등..이것저것 챙기다보니 먼나라 여행떠나는 이보다도 거창해졌다.

그러나, 이런 유치하고도 철없는 기대감은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수속을 밟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참이 깨져 갔다.

우선, 병원에서 일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불친절' 혹은 '귀찮음','짜증'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쓴채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을 대하고 있었다. 매일오는 곳도 아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는 곳도 아니기에 어정쩡하고 어벙벙한 것이 당연한데도 아픈 것이 마치 죄인인 듯한 기분이 들 게 하는 거다.

또한,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엄청 비싼 2인실에 배정이 되어 올라가보니 기가 막힌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 청소했는지도 의심스러운 에어컨(물론, 작동상태도 불량한)과 추상적인 금이 간 변기와 세면대, 열 때마다 귀곡성을 울리는 서랍장과 사물함.

거기다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바로 옆 침대에 배정되어 온 경주파 3인 가족이었다. 33살에 유방암을 선고받은 환자와 남편, 그리고 4살박이 아들은 쉴새없이 오페라같은 하이톤의 대화를 창출해냈다.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끊임없이 돌려지는 TV채널(30분에 100원을 넣어야 한다), 새벽 3시까지 울부짖는 아이..화장실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에코효과까지 더해져서 난 미치기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결국, 간호사실로 달려가 제발 수면제좀 달라고 애걸복걸한 나는 그 후 30분뒤 정신을 잃을 수 있었다.


아침 첫 수술로 스케쥴이 잡혔으나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할 아버지가 늦잠을 주무시느라 늦게 오신 탓에 몇시간 후로 미뤄지고 말았다.(분명, 밤새 인터넷 바둑을 하셨을거라 짐작됨).

어젯밤 12시부터 금식을 한 탓에 위는 텅텅 비어있고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다가 약간 긴장을 하고 있는 내 옆에서 아버지와 엄마는 맛있는 도시락을 펼쳐놓고 정담을 나누고 계셨다. 고구마에 밤이 잔뜩 들어서 너무 맛있다는 둥, 취나물과 김치를 비벼서 먹으니까 환상이라는 둥..디저트로 수박과 포도까지 드시고 났을 때 마침내 나의 수술시간이 되었다.

주사 2대를 맞고 수술실로 실려들어가서 주위를 둘러보니 TV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냥 창고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누가 의사..일까...Fade out!!! 의식을 잃었다.

Fade in!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옆 침대의 경주파3인 가족은 오페라를 연출하고 있고 부모님은 내가 정신이 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시계를 보니 약 1시간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신속하고도 간단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전 종목을 혼자서 참가한 듯 온몸이 쑤셔댔고 고개조차 돌리기 힘들정도로 나약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잠이 들었다 깨었다 수십번 반복하면서도 똑같은 포즈를 유지해야 하는 괴로움이란... 또한 여전히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생고문도 한몫을 더하고 있었다. 저주스런 팥죽..김밥..천도 복숭아..먹지 않아도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운동량이 늘면 가스가 빨리 나올 수도 있고 그러면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간호사의 말에 수술한지 몇시간만에 링겔병을 대롱거리며 온 병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까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장을 꾹꾹 눌러댔다. 얼마전 수술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경험담을 물어보기까지 했다.

몇시간을 유랑하듯 헤메이다 병실에 다다랐을 때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팔둑에 꽃힌 주사튜브에서 피가 역류하는 바람에 링겔병이 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어라..이거..어쩌냐..싶어 간호사실에 다가가니 거의 모두들 눈이 뒤집어 진다. 수술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 미친년처럼 돌아다닌대다가 시뻘겋게 달궈진 듯한 고무튜브와 함께 피가 퐁퐁 솟아오르는 링겔병을 든 내모습은 납량특집이 따로 없었던 듯 싶다.
그 정도가지고는 안 죽는다고, 더 열심히 움직이라고 옆에서 부추겼던 엄마도 잔뜩 혼이 났다. 하하하..

새벽부터 별의별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눈을 뜰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기만 한 나는 차가운 약물이 내몸에 들어오는 것만 인식할 뿐이었다.
나보다 더 신경이 날카로와진 엄마는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어쩔줄 몰라하셨다. 왜 의사가 회진을 돌지 않느냐며, 왜 간호사가 와 보지 않느냐며 분주하게 뛰어 다니시는 기색이 느껴졌다. 가슴 찡한 母精!!

아침 8시. 첫 병원식사가 배달되어 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비린내 가득한 미역국, 군데군데 고춧가루가 묻어있는 김치, 생강장아찌..그리고 계란말이 2개. 이것이 6300원이랜다. 휴가철, 손 바닥만한 방한칸에 10만원 받는 민박집 주인과 다를바없는 날도둑들같은 놈들..

퇴원수속을 밟고 견적서를 뽑아보니 거진 100만원이라는 엄청난 치료비가 나왔다. 아..몇개월째 10원한 장 벌지 못한 나로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순간이었다.

35도가 넘는 폭염을 뚫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상태가 말이 아니다. 단 이틀만에도 이정도니 몇 달, 몇 년동안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그것은 어떠할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푹 고은 삼계탕이 저녁 메뉴였다. 당분간은 용정을 잉태한 문정왕후같은 대접을 받을 것 같다. 그렇지만 맘은 너무나 불편하다. 이런 속도 모르고 친구들로부터 줄기차게 연락이 온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부드럽게 거절을 해도 농담인줄 안다. 결국, 욕을 한차례 해대고 자리에 누워 버렸다.

며칠째 잠을 설치신 부모님은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셨고, 식후 30분마다 꼬박 삼켜댄 약기운으로 인해 머리통은 회중시계마냥 흔들거린다.
양궁선수처럼 잔뜩 부풀려진 왼쪽가슴의 붕대가 지난 이틀간의 여정을 드러내준다. 기침을 할 때마다 온 내장기관이 부채살을 펴듯 펄떡인다.

제발 건강하자. 두 번 다시 아프지 말자. 감자탕 속 뼈 발라먹듯 촘촘하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