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서점을 점령하고 도서관에서 예약대기 조차 할 수 없을 당시에도 별반 관심이 없었다. 빨치산 이야기라면 조정래 시리즈(태백산맥, 아리랑, 한강)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히트 칠 때 '추앙'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적에도 아버지의 해방스토리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도서관에 갔을 때 똑같은 책이 몇 권이나 나란히 꽂힌 것을 보고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순전히 호기심으로 읽어볼 마음이 생긴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몇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느낌이 팍 왔다. 이 사람 글 잘 쓰는구나. 평생 사회주의자로 살았었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딸은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 자신이 결코 알 수 없었던 아버지만의 일생을 다시 보게 된다. 인민의 해방을 꿈꿨지만 자신의 투쟁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이념이 아닌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데 힘을 썼다. 날줄과 씨줄이 얽혀 옷을 지어내듯 아버지가 만든 옷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람 사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쓴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