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창궐 후 3년여동안 자그마치 백신을 5번이나 맞았는데 덜컥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주변에 안걸린 사람이 없던지라 왜 난 안걸리지? 쥐도새도 모르게 걸렸는데 몰랐던건가? 역시 홍삼과 유산균을 꾸준히 먹은 덕을 보는걸까? 이렇게 그냥 무사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3월 1일부터 세차게 앓기 시작했다.
1일차(수)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판피린을 먹고 전기장판을 불꽃처럼 틀어놓은 채 하루종일 잠만 잤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아..이거 뭔가 이상한데. 하면서 진단키트를 해보는데 선명하게 찍히는 두줄.
2일차(목)
일단 출근을 해서 한 번 더 해보기로 하고 집을 나서는데 전철에서 서 있기도 힘들다.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해서 엎드려 있다가 다시 검사를 하니 또 두줄이 나온다. 주섬주섬 업무를 정리하고 근처 이비인후과에 가서 재검사를 했다. 이렇게 확실하게 양성이 나오기는 드문데 말 그대로 뽝! 나왔다고 한다. 양성증명서를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데 3천원 발급비용이 있다. 급하지 않으면 질병관리청 앱에서 격리통지서를 발급받을 수 있기에 이걸로 대체했다. (1주일 격리 증명서가 있어야 유급으로 쉴 수 있다.) 당분간은 밖에 나올 수 없으니 간단하게 먹을꺼리를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기절.
3일차(금)
본격적으로 맹렬히 아프기 시작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특히나 기침이 심했다. 유자차와 도라지청을 쉼없이 마시고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아무거나 밀어 넣었다. 미대오빠가 마켓컬리에서 샐러드와 즉석밥, 과일을 주문해줘서 냉장고를 가득 채워놨다.
4일차(토)
3-4일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데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치과를 1주일 미뤘다.
5일차(일)
슬슬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도날드덕이다. 하루종일 넷플릭스를 끼고 살고 있다. 에드워드 노튼의 놀라운 연기를 다시 보기 위해 '프라이멀 피어'를 봤고 알파치노,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인 '히트'를 봤다. '철인왕후'도 보기 시작했는데 남주(김정현)를 싫어해서인지 속도가 더디다. 배종옥의 카랑카랑한 발성이 좋다.
6일차(월)
목소리 쉰 것만 빼고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틈나는 대로 청소하고 이불빨래 등 세탁기를 쉴 새없이 돌렸다. 사이비 다큐 '나는 신이다'를 켜자마자 꺼버렸다. 단 1도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난다.
7일차(화)
환기를 시킨다고 온집안 창문을 다 열어놨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런 화창한 날씨에 회사 안가고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았다. 우연히 발견한 지올팍의 음악을 하루종일 듣고 있다. 이런 사람이 천재구나.싶다. 마약, 술, 여자에 빠지지 말고 좋은 제작자 만나서 오래동안 끝내주는 음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8일차(수)
아침은 샐러드, 저녁은 즉석밥을 렌지에 돌려 먹는데 점점 물린다. 얼큰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안부를 묻는 직원들의 카톡이 쇄도한다. 몸조리 잘하라며 유자청과 찹쌀떡을 보내주기도 했다. 나 사회생활 잘하고 있었네.
9일차(목)
미대오빠가 소독약을 주문해서 갖다놨다. 오늘은 하루종일 닦고 또 닦을 예정이다. 일주일동안 집에만 있었지만 여행온 것 처럼 편하고 행복했다. 치앙마이 갈 필요가 없겠는걸. 역시 노는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평생 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되도 않는 고민을 한다. 일할꺼리를 잔뜩 챙겨왔는데 죽어도 일하기 싫네. 빌려놓은 책은 쌓여 있는데 펼치기가 이렇게 어렵나.
번외
아침에 일어나니 부재중 전화, 문자 등 한바가지가 와있다. 왜들 이리 관심이 많은거지. 싶어 열어보니 왜 출근을 안하냐고 난리다. 금요일 출근인 줄 알았는데 어제 격리해제 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집안 전체 소독도 해야 하고 빨래도 돌려야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오늘 할일을 차곡차곡 쌓아뒀는데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왕 늦은거 천천히 준비하고 버스타고 출근하는데 1주일만에 외출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기분은 좋아진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모두 반겨준다. 역시 나 사회생활 잘하고 있었어. 오늘은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 내일 부터 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