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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발견254

<신탁의 밤> 폴 오스터 한때, 폴 오스터의 소설에 빠진 적이 있었다. 빠른 스토리 전개와 다양한 인물들이 엮어내는 기괴한 사건들, 차원을 넘나드는 상상력은 마치 내 손에 책이 달라 붙어 있는 것 같은 마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출판사의 잇속을 드러낸 기대이하의 몇몇 작품들이 연이어 출간되면서부터 내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하루키가 그랬고, 최근에는 나쓰메 소세끼가 함부로 다뤄지고 있다. 류의 책은 놀라울만큼 자주,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신탁의 밤'은 오랜만에 접하는 제대로 된 폴 오스터의 소설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맞물린 시간적 공간에서 과거 속의 현실이 미래를 암시하고,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들이 짧은 시간동안 연이어 일어났을 때, 과연 주인공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 2007. 3. 26.
<파리에 간 고양이> 피터 게더스 출판인이자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인 피터 게더스의 인생 자체를 완벽하게 바꿔놓은 고양이 노튼과의 공생기. 노튼은 귀가 접힌 스코티쉬 폴드종이다. 두툼한 발과 큼직하고 동그란 얼굴은 여느 고양이들처럼 무심하고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노튼은 여느 고양이들과 다른 명민함을 지닌 특별한 고양이다.(모든 고양이 주인들은 자신의 고양이를 특별하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잡지에 딸려오는 부록처럼 그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함께 하는 노튼은 사랑을 믿지 않던 뉴요커의 건조한 일상을 따뜻하고 재밌는 놀이동산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누구라도 노튼의 끈질긴 유혹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주인과 함께 전세계를 누비며, 차근차근 자신만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노튼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회색 고양이의 머릿속.. 2007. 3. 26.
<자살보다 섹스>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류의 연애와 여성론.이라는 칼럼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은 책. 내 남자로 만드는 법, 남자들은 이런 여성을 선호한다, 여름대비 퀸카 대작전 등 여성지나 기타 매체에서 수없이 다뤄졌던 내용이 아닌, 류 자신만이 생각하는 독특한 연애론을 접할 수 있다. 현재의 일본을 만들어낸 공동체의식은 붕괴된지 오래이고, 일본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신혼여행도 단체로 가는 일본인들, 결혼 주선회사가 호황을 누리는 나라, 사회적 응석이 만연된 나라, 자신의 '상처'를 떠벌리며 스스로를 애처롭게 여기는 정신 박약아들이 만연한 나라. 원조교제, 종군위안부라는 단어가 탄생한 나라. 그에게 있어 일본이란 점점 침몰해가고 있는 타이타닉호를 의미한다. .. 2007. 3. 26.
<행인(行人)> 나쓰메 소세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처럼 유머스러우면서도 재치있는 내용이 아닌, 인간의 모든 심리적 변화를 세심하게 그려낸 조심스러운 작품이다. 즉흥적이고 무심한 주인공과는 달리, 고독하고 우울한 인텔리인 형은 주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 사실을 자신도 알고 있고, 그래서 더더욱 고립감을 느끼는 형은 끝내 동생과 아내의 사이를 의심하게 된다. 형수와의 여행을 통해 그녀의 의중을 떠보라는 형의 제안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형수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은 그를 잠시나마 혼란스럽게 만든다. 형수는 형수대로, 형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이렇게 살아야 할 운명에 얽혀있는 것에 대해 자조섞인 쓴웃음을 짓는다. 불행한 부부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마음은 몹시도 불편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2007.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