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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맞선에 관한 그저 그런 이야기

by iamlitmus 2007. 3. 26.
M군에게 소개팅을 시켜 줬다. 주변에 여자를 두지 않는 내게 그 귀한 소스가 있었을리는 만무하고 우연히 함께 자리했던 친구가 주선한 자리였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서로 통성명을 하다가 동성동본임이 밝혀졌고 의기투합인지 홧김인지 모를 이유로 새벽3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될때까지 해주겠다는 호언장담을 한 것이 실수였다.

어쩌다 생각난 척 전화하는 M군에게서는 초조함이 그득 묻어 났지만 내 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도 했고 때마침 시험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저녁을 사겠다는 M군의 전화가 걸려왔을때도 약간의 뜨끔함은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나는 입을 쩍쩍 벌려가며 고기를 씹어댈수 있었다.
/할머니가 아프셔.
/(쩝.쩝.)그래? 많이?
/연세도 있으시고. 좀 위험하기도 해.
/(우물우물)그렇구나. 걱정 많이 되겠다.
/그래서 말인데. 돌아가시기전에 내가 결혼하기를 바라셔.
/(흠칫)으..응..그래..
/고기 더 먹을래?

예전에 살던 집 바로 앞에서 식품가게를 하던 아줌마를 만나고 오신 엄마가 해준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 빠진 나를 구원해주기 위한 계시처럼 들렸다. 극도로 심성이 곱고, 부지런하며, 예쁘기까지 한 그 아줌마의 딸의 단점이라고는 나와 같은 나이라는 것이었다. 즉, 혼기를 놓친 노처녀인 주제에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며, 여차하면 재취자리라도 생각하고 있다는 결연함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엄마마저도 아득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난 안보내면 안보냈지, 내 딸을 재취자리에는 못 보내요.
이 말을 들은 내 가슴이 벅차올랐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엄마가 점찍어둔 상대는 함께 수영을 배우는 멤버의 아들이었다. 의류부자재 납품을 한다는 그는 탄탄한 재력과 성실함, 거기에다 지극한 효심까지 겸비한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왜 마흔 두살까지 결혼을 못했는지는 하늘만이 알일이다. 9살의 나이차 이외에도 남자측에서 가장 우려한 것은,
/머리가..좀 벗겨졌어요. 많이는 아니고..

그에 비하면,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일대가 선산이었다는 든든한 배경은 둘째치고서라도 불타는 젊음을 가진 M군이야말로 둘도 없는 그녀의 상대여여만 한다는 나의 주장에 엄마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셨다.
/그럼, 네가 M군이랑 결혼하면 되겠네.
/친구야.
/친구 좋아하네. 에구..저 병신. 어쨌든 안돼.
/왜 안돼. M군. 진짜 괜찮은 애야.
/여자네가 너무 못살아. 최근에 큰아들이 사업하다 집안 말아 먹었댄다. 결혼은 너무 차이나면 안되는거야.
/괜찮아. 사람이 중요하지.

기쁜 맘에 M군에게 전화한 나는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하긴..그러면 좀 곤란하지.

어버이날 기념 외식을 했다. 금쪽같은 아들 돈 쓸까봐 마음 졸여 하시면서도 뿌듯한 포만감에 행복해지신 엄마는 아니나 다를까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니시는 한마디를 잊지 않으셨다.
/내년에는 네 신랑이 돈 냈으면 좋겠다.
/전에 말했던 그 맞선. 어떻게 됐어?
어색한 상황에서는 화제바꾸기가 최상의 방법이다.
/아예 안봤어. 남자집에서 싫대.
/왜?
/나이차가 너무 나면 나중에 신랑 늙었다고 같이 다니는 것도 싫어한다나. 그리고, 여자집이 너무 기우니까 불안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