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의 발견

식탐

by iamlitmus 2007. 3. 26.
식탁 옆자리에 앉은 아버지의 팔이 스친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무의식중에 긁어 제낀 팔뚝은 시뻘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선명하게 그어져 있는 손톱자욱은 그 위용을 자랑하듯 불끈 솟아 있었다. 바로 ‘개고기 식중독’의 결과였다.

회식때 먹은 개고기로 인한 여파는 한달 여 동안 아버지를 괴롭혔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아버지로서는 당분간 일체의 육식을 금한다는 의사의 처방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연달아 잡히는 회식자리마다 개고기파티였으니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엄마에게로 쏟아졌다. 그런 아버지의 입장을 살펴 다른 식구들도 고기 구경을 못하게 되었음은 물론이건만, 고기를 먹지 못해 눈이 열 길이나 푹 들어갔다느니, 어지러워서 버스 번호도 제대로 못 보는 바람에 잘못 탈 뻔했다느니, 이렇게 살 바엔 혼자 사는 것이 낫다며 엄마보고 아들 집에 가서 살라는 등의 아빠의 억지스런 투정은 결국 엄마의 오기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다음날, 고기를 몇 무더기나 사오신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구워대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도, 주말을 보낸 다음주까지도 쉴새없이 고기가 올라왔건만 아버지는 기쁨에서 나오는 흥얼거림과 함께 좌우로 가볍게 몸을 흔들기까지 하며 끄떡없이 해치워 나가셨다.

천렵계획이 잡힌 것이 그 즈음이었다. 회사 동료의 고향 집이 홍천에 있었고, 봉고차까지 대절해가며 몰려가는 인원이 10명이 넘으며, 이때를 위해 고이 길러온 개를 잡아서 먹기로 했다 한다. 보통 체하거나 고생을 만든 질병의 경우 해당되는 음식을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스러운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 아버지는 그 범주에 들지 않는 특이한 케이스인 듯 싶다.
아직 덜 나았으니 왠만하면 먹지 말라는 걱정이 아버지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말이었음은 물론이다.

다음날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에 도착한 아버지의 얼굴은 만족스런 피곤함이 묻어났고, 함께 묻어 온 들통에는 그 원인 제공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냉장고를 반이상 차지하는 통에 무심코 문을 열다가 깜짝 놀라기를 몇번. 제발 좀 빨리 해치우라는 나의 성화에 외삼촌이 긴급 투입되었다.
/원래 파는 집에서 요리를 해야 맛있는건데 할줄 모르는 아줌마들이 만들어 가지고 맛이 별로야. 큰 개 세마리를 잡았거든. 아.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새끼가 있었던 모양이야. 그 놈 보는 앞에서 에미를 잡는 바람에 놀랬는지 그때부터 집밖에 나오지도 않고 슬금슬금 눈치만 본대. 밥은 커녕 물도 입에 안대구. 참 안됐더라. 에이. 잔인해.
/때려 죽인 거예요?
/아니. 목 매달아서 잡았지.

그 새끼가 용케 살아남는다면 내년 이맘때쯤 자신의 어미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또 다른 새끼가 있을지도 모르고. 이것은 영원히 반복되는 지긋지긋함이 되겠지.

아버지는 오늘도 개고기를 드시고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