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효험이 있었는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을 때 개운한 느낌이 든다. 더워지기 전에 하루치 양을 울어제낄 양인지 온갖 새들이 목이 찢어져라 울부짖고 있다. 테라스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자니, 청소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초록색 모자에 상하의도 똑같이 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가 초록색 청소차 위로 쓰레기를 던져주면 차 위에 있던 남자가 비운 뒤 다시 바닥으로 던진다. 나름 재활용품을 분리한다고 따로 내놨었는데, 별 소용이 없을 듯하다.
오늘은 발리에서 두번째로 맞이하는 일요일. 어젯밤에는 비가 쏟아졌었는데, 시침떼듯 다시 쨍쨍하다. 덥기전에 동네한바퀴 돌고 와야 겠다.
에코에게 길을 물어 은세공으로 유명한 쯜룩에 가보기로 했다. 일요일인데도 교통량은 엄청나다. 썬크림을 잔뜩 바르고 긴팔 옷까지 껴입고 용감하게 나선 큰길로 들어섰다. 미리 지도를 숙지하고 20여분동안 내처 달리니, 낯선 길이 계속된다. 이쯤이면 나오겠지. 이만큼 왔으면 됬겠지 싶었지만 도로표지판도 보이지 않고, 시골길만 나오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신호대기에 걸릴 때마다 옆에 서있는 바이크 운전자에게 물어봤지만, 제각각 다른 길을 가르쳐줄 뿐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두세번 길을 물어본 뒤 다시 물었을 때 이미 지나쳤다고 하길래 목숨걸고 유턴을 해서 다시 직진을 했다. 도심지를 벗어나면 대부분 사람들은 영어를 알아듯지 못하니, 지도책을 가리키며 물어봐야 한다. 어떤 남자는 길을 가르쳐주고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몸짓을 하길래 중앙선까지 넘어가며 쫒아갔건만, 전혀 반대방향인 우측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또 유턴. 약간 큰 길이다 싶어 다시 방향을 돌리니 이젠 좁은 길 퍼레이드다. 좌회전, 우회전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이러다 길을 잃겠다 싶어 겁이 덜컥 난다. 기름을 파는 노점상 옆에 멈춰 길을 물으니,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한 뒤 다시 길을 돌아 나가라고 한다. 이젠 포기해야만 할때인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 무조건 큰길로 나가기로 했다. 한참을 가다 이어진 길로 따라가는데, 어라..오른쪽에 큰 바다경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모양 없었는데, 왜 이러지 싶더니 이런. 동물원 사파리 가는 고속도로다. 이대로 가면 대형도로공사장으로 향하게 되는데, 워낙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니 유턴 차선으로 들어가기 어렵다. 저만치 유턴표지가 보이는데, 난 아직 3차선에서 푸닥거리고 있고, 일단, 무조건 차선을 변경하니 뒤에서 달려오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린다. 간신히 유턴을 해서 무조건 동네표지판이 보일때까지 밟아 대니, 이윽고 익숙한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네 뒷길에 들어서자 어찌나 안심이 되는지, 그냥 이 동네에서 남은 일정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에코가 깜짝 놀란다. 결국 길을 못찾았다고 울상짓자, 그럼 내일 자기가 같이 가주겠다고 한다. 야간근무조인 그는 낮에는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시간을 뺏기는 미안하고, 그래도 발리에 왔으니 좀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은근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기사가 내일 오기로 했으니, 모레 아침 10시에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저녁 무렵, 해변가의 다른 방향으로 산책을 나갔다. 호텔이 접한 해변가와 식당가는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모래도 깨끗하고 야간 조명도 예쁘지만, 그 외 현지인들이 다니는 해변은 깜깜한데다 도로도 깨진 곳이 많아 자칫하면 발을 헛디디기 쉽다. 거진 2시간동안 걷다보니 온몸이 땀범벅이다. 덥지는 않지만 습도가 높아 매일 한시간 정도 운동하면 제대로 살이 빠질 듯하다. 다시 번화가로 나와 숙소로 돌아가려니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택시를 탈까 하다 거한 택시비용 대신 슈퍼에서 우유와 모기약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