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는 잔뜩 졸아들어 소금밭이 되었고, 옥수수인 줄 알고 씹은 건더기가 미처 녹지 못한 가루였으며, 프렌치토스트 위에 뿌린 설탕은 맛소금이었다는 슬픈 아침식사를 끝내고, 달디단 믹스다방커피로 놀란 혀를 달래주고 있는 중이다.
하디스에 가서 장을 봤다. 우유,과일,주스,빵,버터를 담았다. 이젠 완전히 현지인의 장바구니다. 실패한 아침 탓에 시장기가 돌아 슈퍼입구에 있는 일본라멘집에 들어갈까 잠시 망설였다.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을 이곳에 와서까지 먹고 싶지는 않다. 그냥 숙소에 가서 신라면을 끓여먹기로 했다. 이젠 김치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종류 별로 믹스커피를 낱개로 구입해서 시음해보고 있는 중인데, 오늘의 커피는 카라멜 마끼아또 맛이 난다.
오전내내 비가 쏟아지더니 다시 쨍쨍한 날씨로 돌아왔다. 비가 내리고 나면 확실히 공기온도가 낮아진다. 그리고, 바다색이 훨씬 더 짙어진다. 잠시 쉬었다가 멘장안섬으로 갈 수 있는 선착장에 가보기로 한다.
저녁은 외식을 할까 하다 동네근처 유명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파는 피자를 먹기로 했다. 포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입구에 위치한 바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에스프레소 머신 바닥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쥐였다. 아기 주먹만한 엉덩이를 가진 어른 쥐였다. 누구하나 신경쓰는 이가 없으니 제 세상 만난 듯했다. 음식 값 외에도 16%에 달하는 세금/봉사료를 내는데, 아마도 이런 장면도 보게 해주는 가격도 포함된 듯하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꿈을 꿨다. 한국 집이었다. 아예 귀국한 것이 아니라 5일정도 남겨두고 잠깐 다니러 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르기안과 스미냑, 우붓에 한 번 더 가보고 싶은데, 막상 가면 실망할까봐 걱정이라는 말도 했다. 잠을 깨어 보니 아파트 침실이다.
아직 나는 발리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남은 일정동안 다른 곳에 좀 더 가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겨우 한 시간 거리인 곳을 덥다고,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가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뭔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것도 싫지만,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발리에서의 20일은 후회없는 일정을 만들고 싶었다.
사누르 뒷편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아트카페에서 영국식 브런치를 먹었다. 스크램블에그, 레드빈, 바게트 그리고 악마의 불꽃처럼 뜨겁고 진한 커피.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기에 모든 스텝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항상 묻는 질문. 어디에서 왔니. 너 인도네시아어 할줄 아니? 알고있는 단어 몇 개를 말하면 그들의 태도는 일순간 확 변한다. 오늘의 보답은 과일쥬스. 널 위한거야. 간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음식에 금새 속이 든든해졌다.
한참 갔다 싶더니, 저만치 까르푸 간판이 보인다. 선물 몇 가지 살 까 싶어 주차장쪽으로 들어서는데 당연히 주차비를 받는다. 130원이지만, 안전하다는 면에서는 아까운 비용은 아니다. 매장 한가운데에 지독한 냄새로 악명높은 두리안이 잔뜩 쌓여있다. 드디어 냄새를 맡아보는 구나 싶었는데 아..이거야. 구린내란 이런거였어. 두리안 진열대 주위가 왜 한산한지 알겠어. 확실히 동네슈퍼보다는 가격이 저렴하다. 똑같은 기념품의 경우에는 2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싸다고 해서 무조건 담다가는 순식간에 10만원이 넘어버리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골랐다.
저녁에 에꼬와 게와까파크에 갔다. 단체학생들이 많이 오는 듯 저녁인데도 북적인다. 경주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사진찍기에 분주하다가도 우르르 몰려나가니 금새 조용해진다. 흉부 반신상의 신과 그가 타고 다니는 가루다라고 불리는 반인반조의 큰 동상이 있다. 외국인은 입장료가 내국인의 2배이다. 에코는 시큐리티라는 옷을 입고 있어서 무료라고 한다. 안내인이 전신상 축조작업이 완료되면 비행기를 타고서도 볼 수 있는 거대한 조각이 될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다른 한쪽에는 양쪽에 용이 앉아 있고, 가운데 거북이가 있는 제단이 있다. 땅속에서 솟아나는 신성한 물이 있는데, 소원을 빌면 이뤄질 수 있도록 축복을 내려준다고 한다. 한국말로 해도 누구 하나 들을 이 없으니 큰 소리로 소원을 말했다. 왠지 마음 속으로 비는 것보다 소리내어 말하면 더욱더 이뤄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발리신이 한국어를 알아들을까.
오는 길에 꾸따와 르기안 골목을 지나오는데, 땅이 흔들릴 정도로 큰 음악소리와 줄지어선 택시들, 인파로 인해 걸어다니기조차 힘들다. 발리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