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일간의 발리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준은 단 하나, ‘조용함’이었다. 젊은 피로 끓어 오르는 꾸따가 아닌, 자칫 심심할 수도 있는 사누르 지역으로 숙소를 정한 것도 가능하면 관광객들과 뒤섞이지 않고, 현지인들과 더 많이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발리의 물가가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장기여행일 경우, 매일 사먹을 수도 없으니,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아파트를 구하기로 결정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10월의 발리에서 숙소를 구하기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현지에서 생활 중인 블로거를 통해 방2개, 욕실2개, 거실, 주방, 조촐한 테라스가 딸린 아파트를 예약할 수 있었고, 그 전에 4일 정도는 고급 리조트에서 최상의 호텔서비스를 만끽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여름내내 폭염에 후달렸으면서도 덴파사르 공항의 후끈한 열기가 반가웠던 이유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또 다른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끊임없이 들려오는 속살거림과 낯선 이들을 향한 호기심이 주위에 감돌았다.
발리의 입국절차는 오래 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더운 나라의 공통된 국민성에 기인한다고도 하고, 예전보다 강화된 검문으로 인해 성질 급한 한국인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내가 도착한 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고, 별다른 문제없이 입국게이트를 나섰다.
호텔까지 공항택시를 이용할까 했지만, 별도로 흥정하는 것도 번거롭고, 누사두아 지역까지라면 호텔측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용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아, 라마다 베누아 호텔 매니저에게 메일을 보내 신청을 해두었다. 입국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픽업 기사는 저팔계 선글라스를 쓴 발리 현지인이었다. 어차피 서로 짧은 영어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운전하는 내내 수상레포츠나 1일관광 등에 대한 영업을 하며, 자신을 꼭 불러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미리 알아본 기사대여비보다 비싼 가격을 부르기도 했고, 별도로 자동차 렌트를 해서 다닐 계획을 갖고 있던 나는 그런 그의 열정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앞으로 운전하고 다닐 길을 익힌답시고 앞만 죽어라 노려보고 있었다.
발리의 도로는 대부분 2차선인데다 표지판이나 신호등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횡단보도도 거의 드물어 무단횡단은 필수이고, 유턴이라도 할라치면, 대충 눈치를 봐서 끼어드는 상황이다. 한국과는 정반대인 운전대와 주행방향도 문제지만, 셀 수 없이 쏟아져나오는 오토바이들과 함께 운전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자동차를 별도로 빌리고, 기사를 따로 채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한다. 기사가 딸린 자동차를 빌릴 경우, 시간이 지나면, 차를 가지고 퇴근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정작 가고 싶은 곳을 향해 이리저리 다닐 경우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다.
덴파사르 공항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누사두아 지역은 고급 리조트가 모여있고, 해변이 아름다워 나이가 지긋한 서양인들과 가족단위 고객들이 많이 묵는 곳이지만, 시내와 멀리 떨어진 편이라 사실 리조트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위치이다.
호텔에 도착해서 픽업비용(15$)을 기사에게 건넨 후 체크인을 했다. 외국인들을 자주 접하는 호텔 직원들은 영어가 유창한 편인데도 발리 영어는 알아듣기 어렵다. 웰컴쥬스를 마시면서 수속을 마치고, 디파짓으로 100불을 맡긴 후 객실로 안내되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과 묵직한 우드가구로 꾸며진 객실은 아담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자 울창한 야자수로 둘러싸인 리조트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당장 필요한 환전을 하려고 했는데, 달러가 떨어졌다느니, 마감시간이 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바꿀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서는 달러나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고 하니, 당장 껌 하나도 사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없이 근처 호텔에 들어가 환전을 하는데, 터무니 없는 환전율이었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빈땅맥주와 마른안주, 음료수 등을 사오는데, 호텔 주변에 공터가 많아서인지 발치근처의 모기들이 맹렬히 달라붙는다. 베란다에 앉아 있노라니, 로비에서 공연을 하는지 익숙한 팝송이 들려온다. 객실과 연결된 베란다 너머에는 노부부가 마주보고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하며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낮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비행기의 점멸등이 쉼없이 깜박인다.
http://www.ramadaresortbenoa.com/index.html
이럴 경우, 국내대형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면, 미리 점유한 객실 수가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
(호텔 사이트 가격은 $90 이었으나, 하나투어 호텔서비스에서 $74불에 예약했다.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았더라도 일단, 예약을 한 후 변경이나 취소할 경우 별도의 요금이 청구될 수 있으니, 충분한 상담 후 실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