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전체적인 업무 프로세스는 대충 그려지지만 세세한 부분이나 예외 사항 같은 것은 잘 모르는 수준이다. 그 중 전임자로부터 승계받은 업무 몇 개가 있는데 내가 만든 문서가 아니다보니 문의가 들어왔을 때 명확한 대답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자리에 돌아왔는데 방금 대화한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불만을 말한다는 것이 내게 잘못 전달된 것을 알았다.
순간,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1) 그냥 모른척하고 아무 답변도 하지 않는다.
2) 잘못 보내신 것 같은데요.라고 답변을 한다.
3) 농담으로 가볍게 넘어간다.
선택은 3-1번. 이 경우 칼자루는 내게 쥐어진다.
/그러게요. 쉽지 않네요. 라고 보냈지만 아무 답변이 없다.
나도 다른 이의 뒷담화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수는 없지만 이곳에 출근한 이후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직원인지라 서운한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방심했네. 마음을 쉽게 허락했어. 씁쓸하기는 했지만 나의 가장 큰 장단점인 망각의 빗자루를 휘둘러 감정을 쓸어냈다.
다음날 아침, 출근 엘리베이터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웃어 주었다. 업무시간 전 휴게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그녀가 다가와 앉았다. 자기가 잘못 말한건데 왜 사과를 하냐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미 난 그녀에게서 감정을 거둔 상태였기에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고 웃어 주었다. 내 편을 들어준답시고 별 의미없는 대화를 쏟아내는 그녀를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의 문을 걸어 잠궜다.
전에 같이 일했었던 직원이 부친상이라며 카톡이 왔다. 왜이러지 싶을 정도로 나를 좋아했었던 사람이었는데(내 입장에서는 많이 부담스러웠다.) 평일에 일산 장례식장까지 갈 정도의 마음은 내키지 않았다. 마침 미대오빠가 코로나에 걸리기도 해서 이 핑게를 대고 부조금만 전달하는 선에서 대화를 끝냈다.
※ 그녀의 부친은 79세의 금쪽이였는데 나의 85세 금쪽이 부친과 똑같이 미운 행동을 많이 해서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받았었다. 엄마하고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응급실에 들어가신 다음날 돌아가셨다는 내용을 전하니 '잘됐네'라고 말하면서도 호상이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베트남 참전을 하셨기에 현충원에 묻히신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요즘 어때?
/여전히 밥도 너무 잘먹고 건강하다.
To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