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선언한 돼지는 철저히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분단위로 메일을 보내고 메신저를 하고 시시콜콜 참견을 하던 애가 잠잠하니 신경이 쓰이기는 커녕 한적하고 좋았다. 평소같으면 내게 맡길 일도 직접 처리하고 있었다. 안가르쳐주겠다 이거지. 업무에 대해 물어보면 바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후가 되도 답변이 없길래 시간 되면 알려달라고 한지 한참이 되어서야 메신저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 텍스트가 올라왔다. 내 자리에서 같이 보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기 자리에서 고개만 돌리고 있다. 몇 가지 질문을 할 때마다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한 짜증스러운 말투가 돌아왔다. 너무 유치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계속 그렇게 해라.
장마가 끝났다. 인간이 어디까지 수분을 빨아들일 수 있는지 생체실험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대머리 남자의 머리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보고 흘러내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도 스윽 닦기만 하면 되니까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 차가운 수건을 척 올리면 바로 시원해질 수 있고. 더위가 가장 심하다는 대서(23년 7월 23일)를 지나 입추(23년 8월 8일)를 향하고 있다. 가을의 입구라고는 하지만 그냥 여름이나 다름없고 처서(23년 8월 23일) 정도는 되어야 밤에 선선해짐을 느낄 수 있다. 한달동안은 방콕에 있다고 생각하자.
출근하면 사무실에 8시 정도 도착을 한다. 휴게실에서 20분 정도 책을 읽다가 업무를 시작한다. 퇴근 후에는 일과 관련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매일 몇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적다보면 감정 정리도 되고 기분도 훨씬 가벼워진다. 우주 크기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지만 이왕이면 좋게 행복하게 살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