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너무나도 내성적인 남자사람 친구를 만나 인사말로 요즘 어때? 가볍게 물었는데,
잠시 아무 말 없다가 봇물 터지듯 사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여차저차해가지고 이렇게 됐어. 너무하지 않아? 난 그냥 그런 뜻이었는데. 하여튼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볼 참이야.라는 엄청 수다스러운 대화를 끝낸 것 같은 책이다.
대부분 어느 집이나 그러하듯 가족에게 특히, 엄마에게 못돼 처먹은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엄마, 첫째 누나, 둘째 누나, 막내인 작가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진짜 힘들었겠다.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범상치 않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않나.라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석원의 글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고르고 고른 단어를 썼다 지웠다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그도 그랬구나. 그런데 그는 꾹 참고 마음속에서 분탕질을 했구나. 그리고, 힘든 마음을 이렇게 덤덤하게 적었구나.
나와 너무나 닮아서 오히려 불편한 사람. 아는 사람 정도의 거리를 두고픈 사람. 그러면서도 무언의 응원을 보내게 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