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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언제 철이 들려나

by iamlitmus 2016. 7. 1.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오픈 1일전이다. 

밤 12시부터 운영테스트를 하고 새벽 6시에 실제 사이트를 오픈하기 때문에 오후에 출근해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내가 맡은 파트는 검증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오탈자나 띄어쓰기 정도만 체크해주면 되지만

개발팀 전원이 나와 있는터라 말 그대로 '우정' 철야를 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계속 오류가 발생하는거다.

개발팀은 예민해지고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새벽 3시가 넘어가니 정신이 몽롱해지고 늘어지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책상위에 엎어져 잔다.

옛날이나 며칠씩 밤샘작업을 했지 이젠 도저히 체력이 받쳐주지를 않는다.


새벽 5시가 되서야 모든 오류가 잡혔다.

퇴근을 하려는데 팀장이 오후 출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가뜩이나 잠을 못자서 예민한 상황에 지금 집에가서 어떻게 출근하냐고 쏘아 붙이니

순간 주위가 조용해진다.


다른 팀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마지못해 나온다고 중얼거렸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달동안 매일 야근하고 주말출근까지 한 사람들은

아무 말 안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데

그나마 칼퇴근을 했던 내가 유일하게 반기를 들었으니

나도 그들도 뻘쭘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많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야근과 주말출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정직원 못지않게 일해왔던 나였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이상하게 뻗대게 되는 부분이 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인데도 아무도 불만을 말하지 않고,

그저 위에서 휘두르는대로 몸빵으로 버텨내는 분위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피엠이 독재자처럼 찍어누르면

각 파트 피엘이 쇼맨쉽처럼 개기는 시늉이라도 해서

아랫사람들을 심적으로 달래주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프로젝트 사람들은 양떼목장에서 데려온 양들처럼 너무나 온순하다.


엄마는 항상 고분고분하게 말 들으라고,

남들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다 짤리면 어떻하냐고 하지만

이상하게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하면서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나도 잘안다.

사회생활은 그렇게 불합리하고

말도안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고

혼자 튀어봤자 나만 손해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의견을 말하는 내 뒤에 숨어

어쨌든 원하는 것을 덩달아 얻어내는 사람들의 비겁함이 싫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이 들어 오후에 눈을 떴다.

잠들기 전에는 오후늦게라도 얼굴을 비춰야 하나 싶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다시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