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알람을 끄고 끙. 다시 돌아누워 잘 수 있는 주말 아침이다. 10시까지 뒹굴거리다 물을 마신 후 침대를 정리한다. 벌써 2개의 루틴을 해냈다. 창문과 베란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다 문득, 미세먼지 나쁨이라는데 괜찮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만 하고 한참 열었다 닫았다. 창가의 식물들이 자꾸만 급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한다. 체력 좋기로 소문난 고무나무마저 다리를 건넜다. 물을 많이 줘서? 햇빛이 부족해서? 추워서? 혼자 있을 때는 보일러를 틀지 않기 때문에 춥게 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실내에서 죽나?
아침에는 과민성방광염 약을 먹는다. 설명서에는 2주에서 8주 사이에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지만 난 벌써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과민성대장증후군도 그렇고 심리적인 영향이 많다고 본다. 방광염은 아니지만 갱년기로 인해 나타나는 증세라고 한다.
추워지면서 눈에 띄게 발이 거칠어졌다. 항상 보이는 손에는 그렇게 찍고 발라대면서 정작 숨은 곳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발은 너무 방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신체를 의인화하는 편이어서 일 많이 하는 오른손에 비해 왼손은 반지나 시계만 차면서 노는 것 같아 공정하게 일을 배분하려고 한다. 발에 꼼꼼하게 로션을 바르고 발톱을 정리하고 따뜻한 양말을 신었다.
호밀토스트를 굽고, 버터와 잼을 발라 요거트와 함께 먹었다. 바나나와 치즈 1장도 곁들여 커피를 마셨다. 어제 산 고구마는 1-2일 동안 펼쳐놓고 말린 후 찐 다음 식사대용으로 먹어야 한다. 어제 길음집에서 먹은 엄마표 집밥으로 인해 또 몸무게 최고치를 찍었다. 누구 말대로 이러다 다 죽는다.
음악도 틀지않고 티비도 켜지 않고 조용한 주말 아침을 보내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급하게 읽다 만 책을 들어 끝까지 읽고 나서 책장을 덮는 것도 좋다. 제주 한달살기, 치앙마이 한달살기 등과 마찬가지로 망원한달살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오후에는 미대오빠와 놀다가 잇섭이 리뷰한 악어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일요일인데도 10개 남짓한 자리가 꽉 찼다. 전체적으로 모든 음식들이 몹시 달았다. 심지어 오뎅국물까지도 달았다. 모듬셋트, 오뎅, 튀김, 순대까지 해서 22,000원.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망원역의 이가네 떡볶이나 미쓰리 떡볶이 소스가 더 맛있다는 결론. 사실, 학교 앞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가본 이유도 있다. 학교도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자 불안해진 미대오빠가 집에 가자고 보채서 그냥 왔다.
누군가의 북리뷰 블로그를 읽다 핍진성이라는 단어를 보고 갸웃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문학계에서는 평론계 이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인데 일반인이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핍진성'
독자가 작품에서 벌어지는 사건 전개를 보고 진실이라 느끼는 정도
어제 저녁에는 합정역 근처 다이소에 갔다가 주말 홍대거리로 산책삼아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혼돈, 그 자체였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주는 처참한 현장이었다. 부킹술집마다 대기줄이 늘어서 있고, 술집마다 가득 들어차 있는 젊은이들을 보며 공포심마저 들었다. 나도 저랬던가. 인파 속을 관통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피곤해져서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집근처 식자재마트에 들러 고구마와 바나나, 요거트를 샀다. 식단 관리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올해에는 10킬로 감량을 목표로 한다. 점심은 직원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최대한 먹지 않는다. 미대오빠는 백신 부작용으로 구토와 설사를 계속하더니 나보다 체중이 적게 나간다.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
리지의 블루스(김명선)
서울대를 나와서 우울증에 걸려서 세 번 퇴사하고 작은 책방을 차린 리지의 이야기
'아스퍼거 증후군'
사회적 상호작용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제한적, 반복적인 관심사와 활동을 보이는 사람들
우울증에 관한 책은 몇 권 읽어봤는데 이 책만큼 스스로에 대해 분석적이고 냉정한 이는 없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같기도 한데, 10대에서부터 대학교,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행보를 읽다보면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이를 만난 것은 오랜만이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논리정연하고 기승전결이 명확해서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잇티제에게는 좋은 책이었다.
제주 당일치기는 4월 중순경에 가기로 결정했다. 마일리지로 예약하면 4만원 이내의 유류할증료만 부담하면 된다. 평일이면 저가항공사가 더 저렴할 수도 있겠지만 마일리지 소진이 주목적이고 3-4만까지 쌓아서 해외로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1만 마일리지를 쌓으려면 1천만원을 써야 한다.) 각자 꼭 가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 한 가지씩 정해서 해보기로 했다. 미대오빠는 송훈파크를 가보고 싶다 한다. 난 오메기떡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