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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발견

내가 '워낭소리'를 보지 않는 이유

by iamlitmus 2009. 3. 3.

워낭소리가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대통령도 봤다. 독립영화의 승리라느니, 삭막한 현대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느니 미디어에서는 앞다투어 떠벌려댔다. 예상치못한 반응에 감독은 당황했다. 노부부는 산골소녀가 그랬고, 기봉이가 그랬듯이 온갖 협박에 노출됐다. (그래서, 현금대신 선물로 준다는데, 그럼 소를 주려나..) 
늙은 소 이야기가 다큐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도, 처음부터 볼 생각은 없었고, 앞으로도 예정에 없다. 동물이 나오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없이 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킹콩'을 보며, 엉엉 울고 앉아 있는 관객은 나뿐이었고, 고양이든, 개든, 말이든, 치타든, 사자든, 하옇튼 동물만 출연했다하면 눈깔이 아파서 볼 수가 없다. 또 다른 이유 하나. 뭐가 하나 떴다하면 우르르 달려드는 군중심리가 싫다. 그 난리 부르스를 쳤던 올림픽때을 떠올려보라. 번개탄도 아니고, 어쩜 그리 순식간에 타오르다 사그러드는지.
어둠의 경로를 통해 파일을 유통한 이를 추적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그렇게 따지면 허리우드 제작자들은 성격 좋아서 가만 있었나? 200만 넘길 때까지 잘 참고 기다려준 것도 기특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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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화제는 단연 <워낭소리>였다. 한 시간여 동안 선배들은 영화 감상평을 쏟아냈다. 관람 막판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도 꽤 됐다. 유감스럽게도 감동했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짜증이 났다"는 평이 대세였다. 선배들은 모두 농촌 출신이었다. 그중 한명은 대학 졸업 뒤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5년간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날 나온 험담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감정이입이 안돼, 감정이입이.... 소가 너무 불쌍해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이건 완전 동물학대야. 소를 자기 집 새끼처럼 해주려면 쉬게 해야지. 꼴깍꼴깍 숨넘어갈 때까지 부려먹더구만.""그 집 창고를 보니까 새 땔감이 수북해. 영화에서 보면 할머니가 '죽기 전에 겨울나라고 소가 땔감나무 해놓고 죽었다'고 칭찬하지만 그 나뭇단 실어 나르느라 소가 수명 단축됐을거야.""영화 보면서 옛날 농사 지을 때의 이웃들을 떠올렸어. 꼭 그런 분들이 한명씩 있지. 경운기도 있으면서 소만 부려먹는 거야. 고추니 비료니 몽땅 소 달구지에 싣고 다녀. 마을 사람들이 '기름값 아끼려고 소 못살게 군다'고 욕했거든.""소가 눈물 흘리며 마치 할아버지와 교감하는 것처럼 그렸던데, 소의 눈은 툭하면 젖어 있거덩?"

취객의 구토에 감격했다는 술집 주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6개월이 지나도록 파리만 날리던 술집에 언젠가부터 서서히 손님이 차더니 하루는 한명이 술을 이기지 못하고 토사물을 바닥에 쏟아냈다. 사업 번창을 예고하는 팡파르처럼 보였을까? 그 주인은 개업 이후 최초(!)로 자신의 사업장에 '토'를 해준 손님의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며 엉엉 울었다는 에피소드다.

독립영화가 파리 날리던 시절을 회상한다면,
트집을 잡는 관객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씨네21 편집장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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