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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254

당신이 잠든 사이 오지랖씨는 끝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잠을 청하려고 애를 쓸수록 점점 더 정신이 맑아 질뿐이었다. 아내는 가늘게 코까지 골면서 잠들어 있다. 오지랖씨는 그런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자신에게 무관심한듯한 아내를 한 대 쥐어 박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신,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베란다로 나가 유리문을 약간 열고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동이 트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초저녁처럼 밝기만 하다. ‘쯧쯧..저렇게 전기를 마구 써대니..자기 것이 아니라 이거지..큰일이야.큰일...’ 몇 미터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었건만 언짢은 그의 눈에는 지나치게 밝아만 보였다. 어떻게든 다시 자야겠다고 생각한 오지랖씨는 거실로 들어.. 2007. 3. 26.
식탐 식탁 옆자리에 앉은 아버지의 팔이 스친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무의식중에 긁어 제낀 팔뚝은 시뻘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선명하게 그어져 있는 손톱자욱은 그 위용을 자랑하듯 불끈 솟아 있었다. 바로 ‘개고기 식중독’의 결과였다. 회식때 먹은 개고기로 인한 여파는 한달 여 동안 아버지를 괴롭혔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아버지로서는 당분간 일체의 육식을 금한다는 의사의 처방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연달아 잡히는 회식자리마다 개고기파티였으니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엄마에게로 쏟아졌다. 그런 아버지의 입장을 살펴 다른 식구들도 고기 구경을 못하게 되었음은 물론이건만, 고기를 먹지 못해.. 2007. 3. 26.
슬픈 기대감 어렸을 적 제일 무서운 사람은 엄마였다. 한번 화가 났다 하면 아무도 말릴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천하무적이었다. 엄마는 항상 옳았고, 다른 이들은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 수 없었다. 그것은 반역이나 다름없었다. 거실에서 TV소리가 들린다. 문짝이 흔들릴 정도로 굉장한 볼륨이다. /제발, 소리 좀 줄여. 시끄럽잖아. 내 방에서 들리게 하려면 나 또한 소리를 질러야 한다. 약간 조용해진다. 무안함과 함께 미안한 맘이 든 나는 거실로 나가 엄마의 기색을 살핀다. /왜 그렇게 크게 틀어? /잘 안들려. 소리가. 베란다로, 세탁장으로 분주한 엄마가 무언가를 묻는다. 난 대답을 하지만, 다시 묻는 소리가 들린다. 한번 더 큰소리로 말을 한다. 이런 일이 반.. 2007. 3. 26.
맞선에 관한 그저 그런 이야기 M군에게 소개팅을 시켜 줬다. 주변에 여자를 두지 않는 내게 그 귀한 소스가 있었을리는 만무하고 우연히 함께 자리했던 친구가 주선한 자리였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서로 통성명을 하다가 동성동본임이 밝혀졌고 의기투합인지 홧김인지 모를 이유로 새벽3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될때까지 해주겠다는 호언장담을 한 것이 실수였다. 어쩌다 생각난 척 전화하는 M군에게서는 초조함이 그득 묻어 났지만 내 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도 했고 때마침 시험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저녁을 사겠다는 M군의 전화가 걸려왔을때도 약간의 뜨끔함은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나는 입을 쩍쩍 벌려가며 고기를 씹어댈수 있었다. /할머니가 아프셔. /(쩝.쩝.)그래.. 2007.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