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의 발견254

내 탓이 아냐 수리를 맡긴 카메라를 찾기 위해 신설동에서 내려 수도학원 근처를 지날 때였다. 펼친 우산 속으로 냉큼 들어서듯 한 남자가 내 옆에 다가와섰다. 나와 보조를 맞춰 걷고는 있었지만, 돌린 고개저편으로 히죽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잊고 있었던 불쾌한 예감이 되살아났고 미처 맘을 추스리기도 전에 있는 힘껏 그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걸음을 멈춰선 나는 그를 죽일듯 노려보았고, 움찔거린 그 남자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뒤따라오던 일행인듯 싶은 두명의 남자들이 웃음을 터뜨려댔다. 초등학교때부터 키가 컸다. 아침조회시간, 다른 아이들이 자로 잰듯 줄맞춰 정렬한 뒤 맨 마지막에 서기만 하면 되었다. 중학교때는 1년마다 10센티가 넘게 쑥쑥 자라났다. 88 꿈나무도 아닌데 이런 신체 변화가 달가울리 없었다. .. 2007. 3. 26.
나의 왼발 아톰발같다. 내 왼발은. 복숭아뼈는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 수묵화처럼 서서히 시퍼런 물이 들고 있었다. 피를 뺐다. 능숙한 솜씨로 부황기같은 걸로 압력을 준뒤 무차별 침세례를 가하니 피가 왈칵..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에게..찔끔인거다. 그 옆에 다시 파바박..찔끔.. 좀 더 옆에 파파박..찔.. 너무 아파 저절로 몸이 뒤틀려졌다. /이상하네. 물이 나와요. /어? 정말..신기하네. 첨보는걸? 한번 더 해봐. 파바박..파바..바..박.. 맨인블랙의 외계인이 된 기분이다. 참다 못해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어? 아파요? 엄지로 꾹꾹 눌러가며 의사가 생글거린다.건반 치듯 그녀의 침 놓는 손이 부산하다. /엄마랑 닮았네. 맞죠? 그 뚱뚱하신 분 딸? 엄마로부터 그녀에 대해 들은적이 있다. 동네 아주머니 딸.. 2007. 3. 26.
비정한 식탐 정확히 아침 7시였다. 온 집안이 돼지 불고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 일어나서 고기 먹어라. 아빠/ 진짜 맛있네. 아침엔 물조차 마시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 그들의 왕성한 식욕에 대한 느낌은, 감탄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약한 감이 있다. 학기 마지막 프로젝트 제출일 이었다. 오후를 한참 넘겨서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희미한 고기 내음을 감지했다. 엄마/ 밥 먹었어? 나 / 아니. 아침에.. 그 고기 줘. 엄마/ 어? 그거 아빠가 다 먹었는데? 아빠/ 아냐. 내가 조금 남겨뒀어. 엄마/ 남겨두긴..뼈다귀 하나 남았구만. 화..화가 났다. 아빠의 몰인정한 식탐에 대해 맹렬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 나는 엊그제 친구들과 안창살과 갈비살을 먹은 것도, 그그저께 육즙이 흠뻑 배어나오는 숯불갈비와 게장백반을 먹었.. 2007. 3. 26.
행복한 고민 지하철 건너편 의자에 한 중년부부가 앉아 있었다. 샴 쌍둥이처럼 꼭 붙어 앉아 손을 꼭 붙잡고 소곤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한참동안이나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로 예뻐보였다. 언젠가 버스에서도 그러한 노부부를 본 적이 있다. 앞뒤로 앉는 좌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사람은 뒤로, 한사람은 그 내민 손을 잡고 있었다. 어린것들이 부둥켜안고 서로의 눈을 뚫어질 듯 응시하며 종알거리는 모습은 꼴도 보기싫은데, 몇십년을 같이 보낸 이들의 은근한 애정표현은 왜 이리도 가슴을 쥐어 뜯는지 모르겠다.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인 브라질과 잉글랜드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또한, 엄마와 아빠의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당신, 감자 쪄 줄까? /그거 좋지. /과일쥬스도 갈아줄까? /그것두 좋지. 곧바로 감자 한바구니와 생 과일쥬스가.. 2007. 3. 26.